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정(중국 정치인)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중앙 진출 이전에는 평생 [[상하이시]]에서 일했던 만큼, 중국공산당 정치계파로는 [[상하이방]]에 포함된다. 한정이 상무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, 시진핑이 상하이에서 일할 때 그를 잘 보좌했던 점[* 시진핑은 2007년 3월 전임 상하이 서기 천량위의 숙청 이후 구원투수로서 부임해오게 되었는데, 이 자리는 시진핑 입장에서는 위기를 잘 수습할 경우 단번에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등극하는 디딤돌일 수 있지만,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본인의 정치경력이 망가지거나 최악의 경우 숙청까지 감수해야 하는 독이 든 성배였다. 시진핑은 [[후진타오]]의 명을 받들어 천량위와 결탁한 상하이방 일파들의 여죄를 캐면서도, 틈만 나면 자신과 훨씬 가까운 [[리커창]]을 밀 게 뻔했던 후진타오가 책잡을 거리를 주지 않아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. 이런 상황에서 한정은 상하이 토박이로서 현지 실정을 잘 모르는 서기 시진핑을 성공적으로 보좌해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쌓고, 다음 해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어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된다. 때문에 상하이방임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의 신임을 얻게 된 것. 상하이의 2인지였던 시장 한정은 서기 천량위의 비위행위를 모를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천량위 숙청 당시에는 좌천, 혹은 천량위의 뒤를 이어 숙청될 거라는 소문까지 도는 상황이었다. 그랬는데도 한정은 시진핑을 잘 보좌해 책임 추궁을 피하고, 오히려 다음 당대회에서 정치국원 겸 상하이 서기로 승진까지 해낸다. 한정 역시 본인 계파인 상하이방을 떠나, 관료 생활 최대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만들어준 시진핑에게 개인적으로 충성할 이유가 충분했던 셈이다.]과, 성격이 모나지 않고 원만하며 윗사람을 잘 모시고 성실하다는 평이 있는 점 (나쁘게 말하면 예스맨) 등 때문에, 다른 [[파벌]]의 [[비토]]를 받지 않은 이유가 크다고 보인다. 중국은 상무위원들이 전체 구역을 나누어 각기 지도하는데, [[홍콩]]이 한정의 지도를 받는다. 즉, 현재 [[홍콩 행정장관]]의 [[직속상관]]이 한정이 되는 것이다. 원래라면 [[캐리 람]] 행정장관 - 한정 상무부총리 - [[리커창]] 총리 - [[시진핑]] 주석 순으로 보고가 올라간다. 실제로 [[11월]] 홍콩에서 [[민주화 운동]]이 거세게 진행되고 있었을 때 [[선전시]]에서 관료들을 다 모아서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한다. 이 때문에, [[2019년]] [[11월 4일]] 홍콩의 캐리 람 행정장관이 한정보다 먼저 시진핑을 만나게 되는 일이 벌어진 바 있다. 이건 중국 [[국립전시컨벤션센터]](상하이)에서 시진핑이 캐리 람을 직접 소환하면서 벌어진 일인데, 캐리 람은 기조연설만 하고 나갈 예정이었으나 '''시진핑이 캐리 람의 손을 잡고 회담장으로 끌고 들어가서'''(영상도 있다!) 강제로 회담한 케이스이다.(...) 캐리 람은 [[11월 5일]] 한정에게 이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한 바 있다 (직속상관을 건너뛰고 윗선을 먼저 만난 것이므로). 한정은 그 상황에 대해 양해를 한다고 밝혔지만 당연히 기분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. [[분류: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부주석]] [[분류: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상무부총리]][[분류:1954년 출생]][[분류:상하이시 출신 인물]][[분류:중국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위원]][[분류:중국공산당 17기 중앙위원회 위원]][[분류:중국공산당 18기 중앙정치국 위원]][[분류:중국공산당 19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]][[분류:중국공산당 상하이시 서기]][[분류:중국의 무종교인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